2023. 11. 12. 01:07ㆍ전쟁사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은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까지 잉글랜드에서 벌어진 플랜태젠넷 왕조의 투쟁과 전쟁으로,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 중 하나로 꼽힙니다.
두 가지 군단, 랭커, 그러고 솝씨 노스(화이트 로즈와 레드 로즈)로 나뉜 유서 깊은 영주 가문들 간의 갈등이 이 시기의 특징입니다.
배경과 원인
워즈 오브 더 로지스의 근본적 원인은 14세기 말 잉글랜드의 정치적 불안과 인구 증가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왕실 내에서의 권력 갈등과 유력 귀족 간의 무력 충돌은 민족적인 분열을 야기했습니다. 유력한 가문들과 특징: 랭커와 솝씨 노스의 대립은 랭커 가문의 심볼인 화이트 로즈와 솝씨 노스 가문의 심볼인 레드 로즈로 나타났습니다. 유력한 가문으로는 윌튼, 랜카스터, 요크 등이 있었으며, 그들 간의 싸움은 인수전, 덕스베리 전투와 같은 중요 전투로 이어졌습니다.
인수전과 덕스베리 전투
1455년의 세인트 앰브로지우스 인수전은 워즈 오브 더 로지스의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이 전투는 랭커 가문과 요크 가문 간의 갈등을 야기했으며, 이어지는 몇 년 동안 계속된 갈등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1461년의 덕스베리 전투에서 요크 가문이 승리하면서 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텐트의 재립과 부활
덕스베리 전투 이후 헨리 6세가 다시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무력 충돌과 권력의 불안정으로 랭커와 요크 간의 투쟁이 계속되었습니다. 텐트의 재립, 버번의 커닝햄, 보스워스의 전투 등에서의 충돌은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리처드 3세의 출현과 보스워스 전투
리처드 3세는 윌튼 가문 출신으로, 부활한 요크 가문을 대표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보스워스 전투에서 헨리 7세에게 패배한 리처드 3세의 몰락은 워즈 오브 더 로지스의 종결을 알렸습니다.
○ 리처드 3세
리처드 3세는 잉글랜드 역사상에서 튜더 왕조의 성립과 관련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의 인물은 '산 킹' 또는 '사악한 리처드'로 알려져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연극 "리처드 3세"에서도 그의 황홀하고 사악한 성격이 부각되었습니다.
- 출생과 가문
리처드 3세는 1452년 10월 2일에 셰일드언의 펌톤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요크 가문 출신으로, 요크 왕실의 제 3자로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랭커 가문과 요크 가문 간의 투쟁과 정치적 혼란이 뒤얽혀 있었습니다.
- 모습과 건강
리처드 3세는 비교적 짧은 키에, 좌골이 살짝 굽은 특이한 모습을 가졌습니다. 그의 유명한 모습은 셰익스피어 연극의 그림자에서 나온 것으로, 이로 인해 그의 왕실 진출에 대한 편견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정치 경력: 리처드 3세는 형제 에드워드 4세의 통치 시기에 중요한 군사 지휘자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랭커와 요크 간의 전쟁에서 활약하여 그의 군사적 업적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경력은 복잡한 요인으로 인해 불안정했고, 특히 그의 조카인 에드워드 5세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그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졌습니다. 부정적 인상과 셰익스피어의 표현: 리처드 3세는 튜더 왕조에 의해 패배당하고 사망했지만, 그의 이미지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리처드 3세' 연극에서는 그를 사악하고 무자비한 캐릭터로 그려내어, 그의 역사적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 종말과 무덤
리처드 3세는 보스워스 전투(1485년)에서 헨리 7세에게 패배하고 전사하였습니다. 그의 시체는 리스터 성당에 장사되었으나 수세기 동안 그의 무덤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2년, 리스터 성당 주변에서 그의 시체가 발견되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 마지막
리처드 3세는 역사와 문학에서 두 가지 얼굴을 가진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역사상의 리처드 3세는 그의 정치적 활약과 패배에 의해 알려져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는 그를 사악한 악역으로 그려내어 인간적인 면을 상실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결론
워즈 오브 더 로지스는 잉글랜드 역사상 유서 깊은 귀족 가문 간의 투쟁으로 인한 혼란을 일으키며, 나라의 향후 통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전쟁은 국가적 불안과 혼란을 초래했지만, 동시에 헨리 7세의 즉위로 틀린 왕조의 종결과 튜더 왕조의 성장을 야기했습니다. 그 결과로는 티더 왕조의 길을 열어나가며, 워즈 오브 더 로지스는 잉글랜드의 역사와 왕위 계승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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